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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명현혜달
작성일 : 2026.02.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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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새로운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종종 문학과 역사 이야기도 합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으로 쓰였습니다.
‘가장 기묘한’ 도박판
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진 사기꾼, 1635, 캔버스에 유채, 106x146cm, 루브르 박 황금성게임다운로드 물관
#1.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진 사기꾼.
그림에서 먼저 봐야 할 이는 맨 오른편에 있는 자다. 풍성한 털 장식 모자, 화려한 깃의 새틴 조끼, 어깨에는 멋스러운 리본까지…. 그렇다. 이 사람은 부자다. 더 정확히는, 부자 부모를 둔 자식일 것이다. 그는 시선을 내린다. 손에 바다이야기릴게임2 쥔 패를 살핀다. 스페이드. 표정 관리에 들어간다. 카드는 썩 좋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직 한 게임이다. 시간은 많다. 판돈은 넉넉하다. 다음에는, 그다음 판에는 짜릿한 재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하나가 아닌 셋이다. 지금껏 관찰한 이는 사냥감일 뿐이다. 먼저 맨 왼쪽의 사내. 패를 들고 딴청을 피우는 듯한데, 바다이야기#릴게임 사실은 팔을 꺾어 허리띠에 숨긴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그것은 다이아몬드 에이스다. 지금 그가 쥔 카드를 필승 조합으로 만들 비장의 열쇠일 터였다. 가운데 있는 두 여인도 수상하다. 둘은 눈을 굴린다. 그렇게 신호를 주고받는다. 앞서 하녀는 주변을 살피며 이날 희생양의 패를 훤히 봤을 테리라. 부인에게 술을 주는 척 이를 알리고, 부인은 미리 짠 손짓으로 바다이야기APK 사내에게 판세를 전하고, 사내는 곧장 등 뒤로 손을 대고…. 지금과 같은 장면. 삼인방의 이러한 공조(共助) 덕에 물 흐르듯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도련님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도박과 술, 굳이 상체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 이제 남은 건, 중독의 늪에 빠진 채 허우적거릴 일뿐이다.
온라인골드몽
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진 사기꾼(일부 확대), 1635, 캔버스에 유채, 106x146cm, 루브르 박물관
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진 사기꾼(일부 확대), 1635, 캔버스에 유채, 106x146cm, 루브르 박물관
빛은 사람과 도박판만을 환하게 비춘다.
다른 모든 곳에는 어둠만이 깔려있다. 몰입감은 이 때문에 더 커진다. 연극을 보는 듯 빨려 들어가는 느낌도 든다. “거기, 당신도 쉿.” 사내와 하녀는 이미 우리에게 눈치를 주는 듯도 하다.
‘요지경’ 점쟁이와 사람들
조르주 드 라 투르, 점쟁이, 1630, 캔버스에 유채, 101.9x123.5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 점쟁이.
청년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베레모 모양 모자부터 손질한 듯 꼬불꼬불한 머리칼, 당시 유행한 가죽 더블릿(doublet)에 금장식을 곁들인 차림새 등 그도 ‘좀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노파가 그런 청년 앞에서 열심히 떠든다. 노파는 점쟁이다. 그녀에게선 먼지 냄새가 폴폴 날 것 같다. 동그랗게 말아올린 터번, 몸을 둘둘 감싸는 현란한 천 모두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다. 복채는 동전 한 닢. 그녀는 그 값에 맞는 미래의 단면을 알려준다. 다만, 그녀의 얼굴이 좋지는 않다. 엿보이는 앞날이 썩 밝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잣집 청년이 용하다는 노인에게 점괘를 듣는 작품으로만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도 반전이 있다. 언뜻 봐선 들러리 같은 여인 셋. 이들 또한 두 남녀만큼 주연급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들은 사내를 둘러싸고 있다. 청년의 그럴듯한 복장에 관심이 갔을지도 모른다. 실은, 맨 왼쪽 두 여성은 은근슬쩍 청년의 호주머니를 공략한다. 꺼내려는 건 돈지갑이다. 빼고, 낚아채고, 모르는 척하기. 2인 1조가 꿈꾸는 완벽한 짜임일 것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점쟁이(일부 확대), 1630, 캔버스에 유채, 101.9x123.5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조르주 드 라 투르, 점쟁이(일부 확대), 1630, 캔버스에 유채, 101.9x123.5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런 가운데, 두건을 쓴 화폭 중앙의 여성은 사내에게 대놓고 눈길을 준다.
이목구비만 봐선 꽤 가지런한 얼굴이다. 청년은 그런 그녀의 묘한 시선을 느꼈는지, 덩달아 눈동자를 맞춰본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이 여성의 손 또한 바쁘다. 그녀는 절단기를 쥐었다. 조심스럽게 자르고 있는 건… 청년이 두른 메달. 추파를 던지는 듯, 그녀조차도 알고 보면 절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노파는 현란한 말솜씨로 그를 붙잡는다. 그사이 또 다른 과업(課業)은 성실히 이뤄지고 있다. 집시 여인들의 설계에 제대로 당하고 만 모습이다.
“그 자체로 교향곡인 작품”
조르주 드 라 투르, 점쟁이(일부 확대), 1630, 캔버스에 유채, 101.9x123.5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게 다일까.
한 부분을 더 볼 수 있다. 청년의 손톱이다. 손톱 밑이 새까맣다. 때가 잔뜩 묻어있다. 좀 산다는 사람치곤 이상하게 궁상맞은 지점이다. 그러고 보면, 청년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해보이기도 한다. 옷소매는 살짝 커보이고, 바지통은 상당히 헐렁해보인다. 본인에게 맞는 차림새가 아니라는 느낌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청년도 ‘있는 척’ 연기를 하는 자가 아닐까. 그 또한 도둑이라 남의 옷을 훔쳐 입었을 수 있다. 아니면, 이 집시 강도단을 잡아내기 위한 위장 수사에 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그림 또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품는다. 그려진 작품 한 점이 아닌, 당장 벌어지는 한 장면을 직접 보고 듣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림 속)손들은 그 자체로 교향곡 같다.” 엘리스 슈바르츠(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교육 담당자)가 남긴 감상평이다.
자의식 없이, 빛과 그림자를 그리다
조르주 드 라 투르, 눈 먼 연주자, 1610~1630, 캔버스에 유채, 86x62.5cm, 프라도 미술관
조르주 드 라 투르는 17세기 당시 가장 특색있는 그림을 그린 화가 중 한 명이었다.
라 투르는 바로크 회화 선구자인 카라바조 풍의 테네브리즘(Tenebrism·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활용해 극적 효과를 연출하는 기법)을 완벽하게 다루는 기술자였다. 그 안에 본인만의 풍자와 해학을 심을 줄 아는 독창적인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아울러 라 투르에게는 또 하나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붓끝에서 자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차분하다. 도박, 사기, 싸움 등 다소 험악한 주제를 즐겨 다뤘지만, 이를 굳이 시끌벅적하게 그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진 사기꾼>에도, <점쟁이>에도 과장된 왜곡 내지 현란한 색채는 없다. 본인의 감각, 갈고닦은 재치를 알아봐달라는 듯한 조바심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림 속 주제와 등장인물들의 상황, 이를 유추할 수 있는 장치 모두 그저 냉정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라 투르의 그림이 무서운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의 작품은 모든 이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작품 앞에 선 많은 감상자가 유추를 하고, 숨은그림찾기 하듯 단서를 찾아보고, 나름대로 추론한 내용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그 틈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게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진짜’ 서사였다. 알고 보니 도박판의 사냥감인 부잣집 도련님, 뜯어 보니 온통 수상한 사람밖에 없는 점집…. 이 모든 게 작품을 더 강렬하게 기억할 수 있게끔 이끌었다. 머릿속 깊이 각인(刻印)시키는 역할도 해냈다. 솟구치는 피, 날 선 칼날과 비명 등 힘을 잔뜩 준 그림이 줄줄이 등장하던 시기. 이런 가운데, 외려 ‘힘을 뺀’ 라 투르의 작품은 그 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던지고 있었다. 보는 이를 흔들지 않고도 붙잡아둘 수 있는 그림이 있다는 것. 예술의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품위있는’ 바로크의 세계
조르주 드 라 투르, 벼룩을 잡는 여인, 1625~1650, 캔버스에 유채, 120x90cm, 로렌 역사 박물관
라 투르는 1593년 로렌 공국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긴 시간 유럽 각국이 영토 분쟁을 벌인 땅이었다. 라 투르에 대해 알려진 건 많지 않다. 남아있는 세례 문서를 보면 그의 아버지는 제빵사였다. 어머니에게는 귀족의 피가 섞여 있었다. 라 투르는 살면서 이탈리아를 한 번, 플랑드르 지방을 한두 차례 여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궁정화가 출신인 자크 벨랑주(Jacques Bellange) 밑에서 그림을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테네브리즘 양식을 접했고, 거기에 흥미를 느껴 파고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잠시나마 동시대를 산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측이 있지만, 그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다. 라 투르는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다. 부유한 회계사의 딸과 결혼한 후로는 돈 걱정을 할 일이 더더욱 없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왕국 국왕 루이 13세가 그의 그림만을 침실에 걸었다는 일화가 돌 만큼 실력도 인정받았다. 그의 작업물이 사랑받은 이유. 깔끔한 묘사와 부드러운 채색 덕도 있지만, 역시나 ‘부담스럽지 않은’ 점 또한 한몫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음악가들의 싸움, 1625~1630, 캔버스에 유채, 85.7x141cm, 게티 센터
조르주 드 라 투르, 음악가들의 싸움(일부 확대), 1625~1630, 캔버스에 유채, 85.7x141cm, 게티 센터
가령 <음악가들의 싸움>을 보라.
이 그림도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사기꾼>과 <점쟁이>처럼 극적인 긴장감은 심되, 딱 그 정도에서 선을 지킨 작품이다. 떠돌이 두 악사가 공연 명당을 놓고 싸운다. 가운데 선 남자는 악기 숌(Shawm)을 호신봉처럼 들이민다. 남은 손으로는 레몬즙을 짜내(!) 상대의 눈에 튀긴다. 그가 정말 눈먼 연주가가 맞는지를 따져볼 모양이다. 밀려나는 남자는 어깨에 허디거디(Hurdy-gurdy)를 두르고 있다. 단검을 슬쩍 꺼내 맞설 태세를 갖춘다. 왼편의 노파는 여기서 이러지 말라는 듯 애원한다. 반면, 오른편의 또 다른 악사들은 킬킬대며 웃음만 짓는다. 그림은 섬세하고, 치밀하다. 탐욕, 거짓, 불안, 염세 등 부정적 인간 심리를 모아놓았지만, 이 자체로 어떠한 훈계나 동요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역시나 그렇듯 또 상상하고, 유추하게만 이끌 뿐이다. 동시대 바로크 화가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나 주세페 데 리베라 등이었다면, 악사들의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단검 끝에는 이미 피가 낭자하고, 신체 부위도 몇 군데는 훼손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런 그림에 열광하는 이들 또한 당연히 많은 시대였다.
종교화도 그답게 그렸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1640~1645, 캔버스에 유채, 128x94cm, 루브르 박물관
긴 머리칼의 여인이 턱 아래 손을 괴고 앉아있다.
그녀가 보는 건 일렁이는 촛불이다. 길게 타오르는 불빛은 어두운 공간을 밝혀주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 한편, 나머지 손으로는 인간의 머리뼈를 정성껏 쓰다듬는다. 빛은 은은하게 퍼진다. 지난날을 돌아보는 듯한 그녀 모습은, 감상하는 이의 숨소리도 죽이게끔 만든다. 여인은 마리아 막달레나. 예수 일행의 한 사람이자, 그의 빈 무덤을 발견한 첫 증인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러한 마리아가 응시하는 불꽃. 이는 비로소 찾아온 영적 깨달음을 뜻할 수 있다. 해골은 삶의 덧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라 투르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다. 라 투르는 이렇듯 종교화를 그릴 때도 한결같은 회화관을 보였다. 빛과 어둠을 앞세우되, 표현을 최대한 절제하고, 그 대신 깊은 사유와 영근 감정을 펴바르는 식이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신생아, 1640년경, 캔버스에 유채, 76x91cm, 렌 미술관
라 투르와 그의 아내 사이에는 원래 자식 열 명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그중 일곱을 잃었다는 설이 있다. 라 투르는 그때부터 풍속화가 아닌 종교화에 더 힘을 쏟았다고. 이 이야기를 알고 그의 <신생아>를 보면, 그림은 존재 자체로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기 예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단순하고, 부드럽다. 이제는 말도 필요 없고, 최소한의 장치 내지 단서를 그려둘 필요조차 없다. 거듭 빼고 덜어내다보니 끝내 이러한 경지에 이르고 만 것이다. 여담으로 라 투르가 구사하는 특유의 황백색은 그가 여행 중 발견했다는 전설 아닌 전설도 있다. 그는 산맥을 타던 중 웬 늑대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동행한 사냥개가 있어 탈출할 수 있었다고. 늑대는 사냥개와 싸우다 광견병 균이 섞인 피를 쏟았고, 그것이 흙과 섞이자 묘한 빛을 뿜었다고 하는데…. 그게 황백색이었으며, 거기에 영감을 받아 비슷한 색을 구현해봤다는 이야기다. 물론 구체적 근거는 없는 이야기로 통한다.
현대미술에 힌트를 안기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635~1640, 참나무에 유채, 169.9x236.2cm, 내셔널 갤러리
주세페 데 리베라, 성 안드레의 순교, 1652년 이전, 캔버스에 유채, 218x198cm, 고야 미술관
라 투르는 루이 13세가 보낸 초대장을 받고 그의 궁에 머문 적도 있었다.
그뿐인가. ‘국왕 전속 화가’(peintre ordinaire du roi)라는 칭호를 받고, 이에 따른 세금 면제 등 특혜도 여럿 누렸다. 부와 권력을 잘 활용할 수 있었는지, 생의 말년에는 꽤 넓은 땅의 소유주가 됐다고도 한다. 그런 라 투르는 1652년에 죽었다. 당시 나이는 쉰아홉이었다. 사인으로는 그가 죽기 전 아내의 생명을 먼저 앗아간, 유행성 출혈열 정도가 꼽히곤 한다. 라 투르가 부린 농민들이 일종의 봉기를 일으켜 학살당했다는 설도 있다. 그가 때때로 농민을 폭행하고, 고리대금업 등 행위로 주변 민심까지 잃은 결과라는 이야기도 따라붙는데… 이 또한 아직은 설의 영역에 가깝다.
조르주 드 라 투르, 목자들의 경배, 164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0x130cm, 루브르 박물관
라 투르는 사후 의외로 빠르게 잊혔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에 서명이나 날짜가 명확하지 않은 점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소실된 작업물이 많은 부분도 치명적인 이유였다. 또, 당시와 당장 루벤스의 입지에서 따져봤을 때 알 수 있듯, 그 시절에는 루벤스의 ‘강렬한’ 회화 방식이 주류로 통하기는 했다. 굳이 따지자면 라 투르의 고요와 정적은 당시 회화 세계 내 샛길에 가까운 격이었다. 라 투르가 깊은 잠에서 깬 것은 20세기 초의 한 시기였다. 특히나 1934년,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열린 ‘17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들’ 전시로 확실히 다시 주목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의 회화관이 되레 현대 미술의 정서와 포개지는 면이 넓었기 때문이었다. 과잉 아닌 절제의 미학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정신, 일방적 선언 아닌 상상과 해석을 권유하는 작품관은 추상 회화와 개념미술 등 세계관과 맞물리는 모습이었다. 4세기가량 심해를 유영하던 라 투르는 지금도 꾸준히 재평가받고 있다. 위대한 인물이 그러하듯, 위대한 그림도 언젠가는 눈을 뜬다. 이 또한 예술의 묘미다.
참고자료
Furness, S. M. M., Georges de la Tour of Lorraine, Routledge and Kegan Paul Ltd
Judovitz, D., Georges de La Tour and the enigma of the visible, Fordham University Press
Wright, C., The art of the forger, Gordon Fraser
기자의 말풍선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주년을 맞은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성모 마리아의 교육, 1650년경, 캔버스에 유채, 83.8x100.3cm, 프릭 컬렉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