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왕비의 예서체 한자와 빼닮은 한자들이 새김된 경주 월성 출토 석비 조각 2점. 왼쪽 조각이 2020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월성 해자 출입로 동쪽 배수로 아래 교란층에서 발견한 출토품이다. 오른쪽 조각은 1937년 재야학자 최남주가 월성 서쪽 교리 일대에서 수습한 뒤 관에 넘겨 해방 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해온 유물이다. 최근 국립경주연구소 쪽이 학계 일부 연구자들에게 공개한 이미지다.
1600여년 전 신라 경주 월성에 주둔했던 고구려군 병사들의 기념비일까. 그로부터 200~300년 뒤 고구려 문자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사람들이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만든 비석일까.
고고역사학계가 월성에서 나온 비석 잔편의 정체를 놓고 술렁거리고 있다. 중국 만주 지안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비가 배경에 있다. 신라 땅에서 고구려 사람이 이 비석의 ‘신라판’을 만들었는지를 둘러싼 민감한 논란이 불거질 참이다.
2020년 12월11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의 장기명 학예사는 6년간 벌인
릴짱 월성 해자 1~3호 발굴 작업을 마무리하다 놀라운 유물 하나를 발견했다. 해자 진입로 도로 유적 동쪽의 배수로 안 콘크리트 구조물을 들어내고 흙을 퍼내다가 4행에 걸쳐 12개의 예서체 한자를 새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깨진 석비 조각(비편)을 찾아낸 것이다. 이 비편은 가장 넓은 곳 기준으로 가로 16.47㎝, 세로 16.58㎝, 두께 13.67㎝에 무게는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약 2.7㎏에 불과했다. 누가 봐도 장중하고 정교한 비석의 일부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다. 시대별 문화적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정한 유물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시기상을 전혀 알 수 없는, 이른바 교란층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너무 작고 글자 수도 적어, 처음엔 신라인들이 만들거나
릴게임하는법 , 후대 고려·조선에서 만든 비석의 잔편이겠거니 막연히 짐작했다. 하지만 2024년 연말 발굴 보고서 발간 시점을 앞두고 출토된 문자 자료 연구와 집필을 담당했던 전경효 학예연구사는 마음에 걸렸다. 다른 신라 비석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정연한 예서체 글자가 새겨진 비석 조각의 예사롭지 않은 풍모가 계속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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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1층 복도 공간에 전시된 광개토왕비문 탁본의 예서체 한자들. 노형석 기자
그래서 2024년 8월20일 신라사 권위자인 주보돈 경북대 교수와 서예사 전문가인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정현숙 원광대 연구교수 등을 경주연구소로 초빙해 감식과 판독을 맡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새겨진 글자가 5세기 고구려 광개토왕비의 예서체를 빼닮은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판독된 글자를 살펴보면 확실한 것은 貢(공), 白(백), 渡(도), 不(불), 天(천) 등 다섯 글자였는데, 모두 광개토왕비에 등장하는 엄정한 예서체의 한자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은 짚었다. 예서체는 신라 비문이나 문자 자료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글씨체이며, 광개토왕비 등 고구려 금석문에 주로 사용된 서체다.
연구소 쪽은 비편을 이루는 돌덩이를 어디서 캤는지도 분석했는데, 경주 남산의 알칼리 화강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결론은 명확했다. 비편은 예서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남산에서 채취한 화강암을 써서 내용을 새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신라 사람인가, 고구려 사람인가. 비편의 출토 층위가 불분명하고 비문 내용도 단편적이어서 작성 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하고도 놀라운 단서는 존재한다. 비석편의 글자들은 광개토왕비의 글자체와 빼어닮았을 뿐 아니라 광개토왕비 명문에 주로 나오는 글자들이 대부분이란 것이다. 주보돈 교수는 “광개토왕비의 글자들이 주로 나오는 비문을 수백년 뒤 신라인들이 썼을 가능성은 수백만분의 1 확률에 가깝다”고 단정했다.
놀라운 성과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2024년 판독 성과를 지켜본 연구소의 김동하 전문위원이 수년 전 국립박물관 이(e)뮤지엄 검색시스템에서 화상을 확인한 일제강점기 월성 출토 명문 비석 조각(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이미지를 전 학예사에게 보여주면서 비교해보라고 일러준 게 또 다른 발견의 계기가 됐다. 지난해 6월24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두 비석 조각을 잇대어 붙여놓고 3디(D) 입체 스캔 기기로 투사해 살펴보니 아귀가 딱 맞고 각각 새긴 글자들도 서로 연결되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박물관이 소장해온 비석 조각은 글자를 새긴 명문 뒷면의 먹글씨 기록을 통해 신라유산 연구 선각자였던 향토 사학자 최남주(1905~1980)가 1937년 월성 서쪽에서 찾아 수습한 유물로 확인된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것으로만 소장품 카드에 기록해놓고 80여년간 수장고에 묻혀있던 유물이었는데, 지난해 연구소·박물관의 공동 연구와 스캔 작업을 통해 2020년 월성 출토 비편과는 원래 한 몸체를 이룬 비석이었음이 기적적으로 드러나게 된 셈이다.
고구려 광개토왕비의 글자들과 빼닮은 글자들이 새김된 경주 월성 출토 석비 조각 2점을 서로 맞붙인 뒤 3차원(3D) 스캔해 표면 글자들을 재현한 이미지다. 아귀가 딱 맞으면서 광개토왕비 특유의 예서 글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문장을 이루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최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쪽이 학계 일부 연구자들에게 공개한 이미지다.
비록 온전한 문장이 확인된 건 아니지만, 이 두 비석 조각은 이후 학계의 검증 결과에 따라 한국 고대사를 새로 쓸 수 있는 핵탄두급 유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구려 석비로 공인될 경우 광개토왕비에만 나오는 5세기 고구려의 신라 남정 기록을 확실한 사실로 입증하는 구체적 실물 자료가 처음 신라 왕성 유적에서 확인된다는 획기적 의미가 있다. 고구려의 남정은 400년께 백제·가야·왜 연합군에 포위당한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광개토왕이 5만 대군을 보내 임나가라의 종발성(오늘날 김해·부산)까지 파죽지세로 치고 내려오면서 가야·왜의 군대를 격퇴하고 신라를 수십년간 속국으로 삼았다는 것이 골자다. 관련 내용은 ‘삼국사기’ 등 문헌 사서에는 나오지 않고 광개토왕비의 비문에만 나온다.
이런 역사적 정황을 고려할 때 월성 유적에서 고구려 계통 글자를 새긴 석비편이 나왔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내장한 발견으로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더욱이 비편들의 세부를 보면, 광개토왕비에 자주 나오는 不(부), 渡(도), 貢(공) 등의 글자들이 광개토왕비 특유의 고구려풍 예서체를 쏙 빼어닮은 형태로 새겨졌다. 이런 맥락에서 신라에 진출한 고구려인의 기념비일 가능성에 좀더 큰 비중이 쏠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구려군이 경주를 사실상 점거·주둔하면서 신라를 속국화한 당대의 정황을 짚는 단서가 될 것이란 추론도 할 수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1층 홀 복도에 재현 설치된 광개토왕비 비문의 예서 글자들. 노형석 기자
물론 비편 표면을 물갈이해 다듬은 치석의 정도가 말끔해 자연석에 새긴 광개토왕비와 충주비, 2009년과 2012년 각각 발견된 만주 백암성터 비편과 지안 비 같은 5세기 고구려비와는 물리적 재질감이 다르며, 7세기 신라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반론(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오는 11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지난해까지 비석 잔편을 판독한 학자들을 포함한 문자사·신라사·고구려사 전문가들이 모여 이 비석 조각의 정체를 가늠할 토론회(포럼)를 연다. 토론의 결론은 어떻게 나올까. 과연 고구려-신라 교섭의 새 역사를 쓰게 될까.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