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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남 기자]
한일 관계 전문가이자 일본통으로 현재 한·일 포럼의 한국 측 회장이기도 한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최근 <한·일 관계 80년사>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일관계사에 대한 알기 쉬운 교양서로, 강창일 전 대사가 아니면 쓰기 어려운 책이라 한다.
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강창일 전 주일 대사를 만나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향후 한일관계 전망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한·일 관계를 단순한 감정의 문제로 보는 대신, 역 릴게임 사와 지정학, 세대 구조 등 복합적 요인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역사적 책임은 분명히 지켜야 하지만, 세대 간 변화와 민간 교류를 통해 미래 협력의 길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창일 전 주일 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한일관계, 감정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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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일?인터뷰에 응하는 강창일 전 주일대사
ⓒ 강창일 전 모바일릴게임 주일대사 제공
- <한·일 관계 80년사>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2년 전에 동국대학교에서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일관계를 강의했다. 끝나고 나서 책으로 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어서 알기 쉬운 교양서로 내게 알라딘게임 되었다. 1년 동안 준비하면서 오히려 내가 많이 공부하게 되고, 생각을 정리할 수가 있었다."
- 이 책은 '해답'보다는 '문제 제기'에 더 가까운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대사님은 한·일 관계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이 구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은 무엇이라고 보나.
"무려 2000여 년 릴게임뜻 동안 두 민족은 교류했다. 문명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근친 관계에 있고 지정학으로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관계가 구조를 만들게 되는 첫 번째 요인이지요. 어떤 일본인 정치가는 이를 근친 증오의 관계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서로 잘 모르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과제가 많아서 감정을 배제하고 그 구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상호 이해를 위해서는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역지사지의 자세와 지혜가 필요하다."
- 책에서 한·일 관계가 정권 교체 때마다 급변해 온 과정을 반복적으로 지적했다. 왜 일본에서는 대한 외교가 이처럼 국내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가 고착됐다고 보나?
"한국은 대부분 일본과 화친 관계 맺기를 원해왔다. 일본은 정권의 성격과 입장에 따라 대한 정책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무라야마 사회당 총재의 '과거사' 반성 및 친한 정책과 아베 정권의 반한 정책 및 '과거사' 부정 정책을 우리는 목도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일본은 진정으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 '친일 대 반일', '굴욕 대 자존'이라는 이분법이 한·일 관계를 소모시켜 왔다고 했다. 이 프레임은 누가, 어떤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강화돼 왔다고 보나?
"각자 자기 나라의 정치적 입장에서 반한, 친한(또는 친일, 반일) 입장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정권적 차원에서는 '친일', 국민적 차원에서 '반일'을 부르짖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 독도문제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이 터지면 한국 국민은 들고 일어선다. 우리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당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다. 가끔 정치권에서 국민의 반일 감정을 이용하여 일본을 압박하거나 편승하여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일도 종종 있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이 '과거사' 문제를 깔끔히 정리하지 않고 어영부영하면서 기만했던 측면도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국교 수립할 때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국민에게 눈속임하면서 기만적으로 처리해서 그렇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일한 병합의 성격과 시점 문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그렇지만 그것을 통해 경제적으로 한국도 발전하게 되고 일본도 성장할 수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종래 양국 정부의 투트랙 정책에 의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한일 '신선언'에서 나온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자'라는 것이 큰 틀의 전범이 된다고 할 수가 있다."
- 일본 역시 자민당 장기 집권 구조 속에서 역사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한국의 정권교체 중심 정치와 일본의 보수 장기집권 체제는 한·일 관계에 어떤 상호작용을 만들어 왔다고 보시나?
"일본은 1945년 패전하여 현대 국가가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된 '과거 청산' 없이 계승되어온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일본적 역사 인식과 상식이 통하고 있다. 물론 진보 쪽 사람들도 있지만 그 세력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의 소수집단이다. 그래서 해체되지 않고 제국주의 시대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1945년 8월 15일은 단절점이 아니라 연결의 시점이기도 하다."
- 대사님이 말하는 '지일(知日)'은 흔히 말하는 친일이나 문화적 호감과는 분명히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개념이 자주 오해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친일'이라는 표현은 학술적 개념이라기보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 정서적·도덕적 언어로, '반민족적 행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을 언급하거나 분석하는 행위 자체가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되기 쉬웠고, 일본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마저 종종 오해를 받아왔다. 제가 말하는 '지일(知日)'은 일본을 좋아하거나 옹호하자는 뜻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역사 인식과 정치 구조, 대중 정서를 감정을 배제하고 정확히 이해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이해'와 '동조'가 혼동되면서 '지일'이 '친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생겼다고 본다.
또 '극일(克日)'이라는 용어 역시 일본을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한 콤플렉스적 인식에서 나온 단어다. 이제는 감정적 구호보다는 정확한 용어와 인식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며,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 박상현 교수는 <한국인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에서 한국인의 일본 인식에 증오, 열등감, 우월감, 피해의식이 뒤섞여 있다고 분석한다. 대사님은 이 진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좋은 이야기이다. 박상현 교수의 분석은 한국 사회가 일본을 인식해 온 역사적 경험을 잘 짚은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감정의 복합성은 모든 세대에 동일하게 적용되기보다는, 세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식민지 경험과 전후 질서를 직·간접적으로 공유한 세대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일본을 감정의 대상이라기보다 한국과 분리된 하나의 타자로 인식하며,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세대 변화는 분명히 긍정적인 요소이며, 앞으로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은 '피해의식이 구조화된 인식'이라고 본다. 피해의 역사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판단까지 지배하게 되면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기 어렵다. 앞으로는 과거를 직시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 외교의 가능성
- 평소 역사 문제와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하되 병행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접근이 역사 문제를 희석한다는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해, 외교적으로 반드시 병행돼야 할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간단히 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이다. 일본은 제국에서 완전히 탈피 못 해서 아직도 제국주의 때의 역사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 배경을 알아서 대처해야 한다.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식의 대응 방식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래서 투트랙 혹은 멀티 트랙으로 대응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에 한·일 양국은 그렇게 해 왔고, 세계적으로도 대부분의 국가는 그렇게 해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 역사 문제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은 무엇이며, 동시에 현실 외교에서 유연해야 할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역사 문제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은 역사를 팔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다른 분야에서 협력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해나가야 한다. 다만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관계를 단절하거나 대화를 중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 문제는 역사 문제대로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되, 경제·안보·인적 교류 등 다른 분야에서는 현실적인 협력과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이해와 설득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 인식과 상식은 국제적으로도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설명하고 설득해 나가는 외교가 가능하며, 그것이 원칙과 현실을 함께 지켜나가는 길이라고 본다."
- 외교는 국가의 영역이지만, 한·일 관계의 장기적 안정은 시민사회의 역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대사님이 보시기에 시민 외교와 민간 교류는 어디까지 가능하며, 또 어떤 한계를 지니나.
"한·일 양 민족 간의 민간 교류는 오랫동안 활발히 이어져 왔다. 학술, 문화, 예술,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는 국가 외교가 닿기 어려운 영역까지 연결되며, 양국 국민 사이의 신뢰와 이해를 쌓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국가 간의 정상적 관계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지만, 민간 교류와 시민 외교는 장기적 안정과 상호 이해를 촉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외교가 경색될 때도 지속 가능한 연결망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민간 차원의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정치적 갈등이나 외교적 마찰이 심화되면 민간 교류만으로 양국 관계 전체를 좌우하기 어렵다. 현재도 양국 정부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아, 민간 활동의 범위가 제한되기도 한다. 따라서 시민 외교와 민간 교류는 국가 외교를 보완하고 심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정부 차원의 협력과 정책적 뒷받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 해방 100년, 수교 100년을 살아가게 될 다음 세대에게 지금 세대가 전해 주어야 할 한·일 관계의 역사적 교훈이나 과제는?
"이제 한국은 일본과 자웅을 겨룰 정도로 성장했다. 몇 년 전부터 우리가 개인소득에서 앞설 정도이다. 우리도 통 크게 대인의 자세로 상대했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손잡고 세계 속에 비상하자라는 제언을 하고 싶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주일대사로 재임하며 "이 장면만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재임 중에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느낀 순간 중 하나는,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를 매우 좋아하는 모습을 직접 본 일이다. 도쿄 신오쿠보에 가면 주말마다 일본 청소년들이 한국 음식과 문화 콘텐츠를 체험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 5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다. 한국 사람들도 일본을 많이 방문한다. 작년 한 해에만 800여만 명이 일본을 찾았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즐기고 교류하는 장면을 볼 때, 한·일 관계의 가능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성숙한 한·일 관계'란 어떤 모습인가? 갈등이 없는 관계인가, 아니면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관계인가?
"갈등은 늘 존재한다. 그것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양국의 정치인들은 왜 한·일 간에 우호 증진과 협력 관계의 강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기를 바란다. 한·일 간에 걸려 있는 현안은 풀 의지만 있으면 쉽게 풀릴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