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바다이야기 게임바다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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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명현혜달
작성일 : 2026.01.20 08:07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상당히 작은 편 이죠. 아케이드 게임이란 오락실에서 돈을 내고 플레이 하는 게임이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예전 학교 앞에서 100원 넣고 게임 하던 게임기 역시 아케이드 게임이죠.
아케이드 게임은 미국과 일본에서 많이 흥행했는데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일본에는 아케이드 게임 만을 개발하는 대형 회사가 다수 존재할 만큼 큰 규모의 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케이드 게임을 생산하는 회사가 많지 않았고,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국에 아케이드 시장이 크지 않았던 건 2000년대 초반 이미 PC가 상용화 되기 시작하면서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이 대히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굳이 게임을 하러 오락실을 갈 필요가 없었죠. 그래도 오락실 마니아들 덕에 한국 아케이드 시장도 간신히 숨은 쉬고 있었는데, 아케이드 시장을 박살 내버리는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바다이야기 사건 이죠. 바다이야기는 일본의 파칭코 게임이라 볼 수 있는 사행성 게임 입니다. 게임물등급관리위원회가 생겨난 사건이기도 하고 박연차 게이트 뇌물 사건과 함께 그 당시 참여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2001년 한국에서는 경품성 상품권이 허용됩니다. 1년 뒤인 2002 한일 월드컵의 수혜를 받기 위해 관광업계가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죠. 그 당시 잡음도 많고 걱정과 우려도 많았지만 월드컵이라는 행사 때문에 경품화가 허용됩니다. 더 나아가 상품권을 현금으로 환전 해 주는 곳도 생겨나면서 도박형 게임장이 생겨나기 시작하죠.
그래도 바다이야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도박형 게임장이 있다정도였는데에이원비즈대표 차용관이 바다이야기를 개발하면서 한국 어디를 가던 볼 수 있는 게임장 바다이야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차용관이 처음 만든 게임은 스크린경마였습니다. 경마 게임만 유통하는 자회사 까지 설립하며 사업을 펼쳤고 스크린경마 3위까지 올라서죠. 하지만 이건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스크린경마는 누가 봐도 도박이고, 여러명의 인생을 망치고 있었죠. 스크린경마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강력한 제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스크린경마는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당시 차용관은 외상으로 오락실 업주들에게 팔았던 스크린 경마 기계값을 못 받게 되었고 회사는 20억이 넘는 빚을 지고, 1년 넘게 직원들의 월급은 커녕 사채까지 쓰며 망하기 직전인 회사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4년 차용관이 일본에 가서 대박 아이템을 가지고 오죠. 당시 일본에서는
오우미노모노가타리가 대박 행진을 치고 있습니다.오우미노모노가타리란 황금메달이
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각종 바다 생물을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이었죠. 차용관은 한국에 오자마자오우미노모노가타리짝퉁 게임을 개발 했습니다.
직원들 모두 기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죠. 그렇게 개발한 바다이야기가 대 히트를 칩니다. 오락실 사장들은돈을 먼저 주겠으니 제발 기계 좀 달라며 찾아왔고, 전국 어디를 가든 바다이야기 게임장이 보이기 시작하죠. 심지어 시골의 읍내까지 바다이야기 게임장은 지금의 치킨가게 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바다이야기가 대박을 치자 비슷한 부류인 황금성, 야마토 게임 등 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화려한 간판과 썬팅으로 가려 놓은 창문은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습니다. 이에 차용관은 회사를 확장하고 엄청난 돈을 쓸어담죠. 대략 4만 개가 넘는 게임기를 팔았고,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추정되고 직원수는 70명을 넘어섭니다.
이후 사행성 사업이라며 욕을 먹은 차용관은 온라인 게임 사업을 위해 인수할 회사를 찾고 다니죠. 이런 상황에 정부와 경찰은 뭘 하고 있던 걸까요? 뭘 할 수가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왜냐하면 합법이었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경품성 상품권이 허용 되었다는 것. 일본의 파칭코를 아시는 분이라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바다이야기는 기계에서 돈이 나오지 않았죠.
법적으로 허용된 상품권이나 혹은 라이터, 경품성 물건들이 나왔습니다. 상품권은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근처 교환소에 가면 현금으로 교환을 해주었죠. 현금이 나오지 않으니 도박이 아니였고, 게임기도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합법적인 게임 이었습니다. 법적으로 걸리는 건 당연히 없었죠.
당연히 나라에서 재빨리 조취를 취했어야 하지만 게임의 허가를 내주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바다이야기 업장은 대놓고 장사를 하며 당첨금액이 얼마다 대박이다 라는 현수막 까지 걸었습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바다이야기를 알고 언론에서 다루어 졌을때도 위원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앞으로 과도한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임은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미 시중에 바다이야기 게임은 퍼진 상태 였습니다.
2004년 ~ 2005년 바다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바다이야기를 처음 만든 차용관뿐만 아니라 게임장을 차린 사장들, 상품권을 환전 해 주는 사람들, 게다가 게임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LCD를 만드는 회사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립니다.
하지만 검찰이 바다이야기를 눈 여겨 보기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서울 중앙 지검이 제조사를 압수수색하기 시작했고, 게임장 업주가 바다이야기의 승률을 조작한다는 소문을 듣고 수사를 꾸렸죠. 이때 압수한 상품권의 금액만 9조였습니다. 바다이야기에 대한 말들로 언론이 난리가 나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한 가지 말이 떠돌았죠.
여당 당시 참여정부의 유력 인사 중 한명이 게임기를 만든 회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유진룡 문화부 차과이 경질되었는데, 이게 바다이야기 허가를 반대해서 경질되었다는 소문도 돌죠. 이건 훗날 관계가 밝혀졌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언론과 야당은 난리가 난 상태였죠. 게다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이 근무했던 회사까지 불똥이 튑니다.
바다이야기 게임의 제작은지코프라임 이 담당했는데,지코프라임 은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던 회사인우전시트텍 을 인수해서 우회상장을 하려고 했죠. 노지원이 근무했던 회사가우전시스텍 이란 게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옵니다. 후에 검찰 조사 결과로 상관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론은 미친 듯이 끓어오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다이야기는 잘 운영되었습니다. 불법이 아니었으니까요. 회사는 압수수색을 당했지만 업장들은 무사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까지 알려져 손님이 느는 현상까지 보였죠.
매일 신문에는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게임이 위원회를 통과 했는지 밝혀졌죠. 위원회에 근무하는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이 적발되었고, 위원회 예심의원 일부가 오락실 업주와 동업 관계 이다 등, 유착 관계가 드러납니다. 결과적으로 바다이야기 사건은 정치권 문제가 아니었고, 위원회의 문제임이 밝혀지게 되죠. 위원회 뿐만 아니라 문화부 국장은 물론 경찰까지 뇌물을 받은 죄로 잡혀 들어 갑니다.
2007년 검찰은 바다이야기 관련 153명이 처벌 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바다이야기 사태는 끝이 납니다. 바다이야기는 많은 여파를 남겼습니다. 영등위는 게임 심의 자격이 박탈되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생겨났으며,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판은 완전히 망해버리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바다이야기와 같은 게임장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예 대놓고 장사하는 곳도 많습니다. 경찰이 이걸 단속하려면 환전 하는 순간을 잡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냥 게임 하는 곳에 쳐들어간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겁니다. 일반 사람이 간다고 해 봤자 정상적인 게임을 하는 곳처럼 설명해주니 방법도 없죠. 주변에 사는 사람이 신고해도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법의 허점인 것이죠.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생겨난 게임물등급위원회도 문제가 많습니다. 얼마 전 집단 민원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죠. 정말 문제는 얼마 전 바다이야기를 빼다 박은 게임인바다신2라는 게임이 전체이용가로 심의를 통과했습니다. 심지어 경품까지 나오는 아케이드 게임이죠. 이걸 계기로 바다신2 게임 이외에 많은 도박류 아케이드 게임이 심의에 통과 된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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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nara.info
찻주전자와 찻잔을 그리고 홀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붓글씨로 적은 법정 스님의 작품. /맑고향기롭게 제공
‘다섯 이랑 대를 심고 다섯 이랑 채소 갈고 한나절은 좌선하고 한나절은 글을 읽고-갑자 하지절 불일암에서’
한글을 세로로 써 내려간 아래엔 찻주전자와 찻잔이 그려져 있다. 법정 스님이 갑자년(1984) 하지에 쓴 글이다. 여름을 앞둔 송광사 불일암의 한적한 풍경이 생생하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붓글씨로 선시(禪詩)를 적고 그림을 그리고 ‘붓장난’이라고 했다. 또 제자 릴게임다운로드 와 신도와 지인들에게 붓글씨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진 않았지만 스님만의 독특한 ‘법정체(體)’를 보여주는 글씨들이다.
산과 초가를 그리고 붓글씨를 쓴 법정 스님의 작품. /맑고향기롭게 제공
법정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스님의 입적 16주기(3월 11일)를 앞두고 스님의 붓글씨 작품 100여 점을 모은 ‘우리 곁에 법정 스님, 붓장난’ 전시가 19일 개막해 3월 2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은 길상사 바로 건너편 ‘스페이스 수퍼노말’.
먼저, 스님이 ‘붓장난’이라 이름 붙인 선묵(禪墨) 작품들. 스님은 “물을 움켜 뜨니 달이 손안에 있고 꽃을 만지니 향기가 야마토무료게임 옷깃에 스미네. 옛 선사의 노래. 오늘 우리들은 얼마나 건조한 정서 속에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네. 먹이 남아서 붓장난했네”라고 적었다. 이 작품을 비롯해 몇몇 작품엔 산중 초막에서 지내는 삶의 간소함과 여유로움을 담백하게 노래했다. 덕조 스님은 “문자 그대로 편지를 쓰다가 먹이 남았을 때 그리고 쓴 작품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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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붓장난'이라 쓴 붓글씨 작품. /맑고 향기롭게 제공
법정 스님은 찻주전자와 찻잔 그림을 본인의 시그니처로 삼은 듯하다. 화면 아래에 찻주전자와 찻잔을 그려 넣고 나머지 여백에 글을 쓴 작품도 여럿 나온다. 여러 편 나온 ‘홀로 검증완료릴게임 마신 즉 그 맛과 향기가 신기롭네’라는 글이 대표적.
법정 스님의 번역으로 유명한 ‘숫타니파타’의 구절을 인용한 듯한 글귀도 보인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않고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대중에게는 냉랭하게 보였던 법정 스님의 따뜻한 인간적인 면도 느낄 수 있다. 봉은사 다래헌과 송광사 불일암에서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책과 차(茶)를 보내준 데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어린 자녀를 키우며 교사 생활을 하는 신도를 격려하고, 감기 조심을 당부하는 자상한 모습도 보인다. “나도 모질지만 추위란 놈도 모질군. 봄이 기다려지네” “멀리 이민이라도 간 줄 알았어요. 하도 감감 소식이기로” “또 약 먹을 시간이네. 여덟 시 반이군” “어느 때고 불쑥 나타나게”라고 적기도 했다. 연하장에선 “새해에는 없는 듯이 들어앉아 선현들의 말씀이나 읽으면서 살고 싶소”라고 새해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에게는 종교는 다르지만 수도자로서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독’이다. 법정 스님은 “수도자에게 있어서 고독은 그림자 같은 것”이라며 “배부른 상태에서는 고독을 느끼지 못합니다. 주린 자만이 고독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독을 배우십시다”라고 적었다.
젊은 시절의 법정 스님. /맑고 향기롭게 제공
‘삼국지’나 ‘서유기’를 읽으며 소일하는 모습도 보인다. 법정 스님의 붓글씨는 세로쓰기일 때는 흘림체로 종이 전체를 화선지 삼아 그림처럼 흘러간다. 아래아(ㆍ)를 조형 요소로 활용하고, 먹이 점점 옅어지다가 다시 진해지는 모습에서 편지 한 통을 쓰면서 서너 번 붓을 먹에 찍어 써내려간 법정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편지지에 가로로 쓴 편지는 같은 사람이 쓴 글씨가 맞는지 싶을 정도로 필체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불일암 '빠삐용 의자'에 앉은 법정 스님. /맑고 향기롭게 제공
전시장 2층 불일암 상량문(1975년)도 처음 공개되는 자료. 불일암 건축을 도운 분들 이름이 적혀 있는데 장욱진 화백, 디자이너 앙드레김, 비구니 불필 스님의 이름도 보인다.
붓글씨 작품과 함께 덕조 스님이 가까이에서 촬영한 법정 스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불일암, 길상사, 강원도 오두막 그리고 병실에서 항암 치료받으면서도 기도하는 모습도 있다. 작년 10월 ‘예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빠삐용 의자’도 불일암에서 무진동차로 옮겨와 전시하고 있다.
전시를 준비한 길상사 주지 덕조 스님은 “이번 전시와 책(도록)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은사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하는 작은 기도이자 감사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길상사는 앞으로 경내에 ‘무소유 문학관’을 만들어 이번 전시작 등 법정 스님 작품을 소장-전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