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볼 네임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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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명현혜달
작성일 : 2025.12.0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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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no1reelsite.com잊혀진 충북 청주 현대사를 복원하기 위해 청주 기억여행을 떠납니다. 해방 직후부터 1960년 4.19 혁명 시기까지 청주에서 있었던 정치, 사회 사건을 살펴보고 지역 현대사를 재구성하고자 합니다. 이 작업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근현대사 역사 텍스트를 만드는 길입니다. 또한 민주주의, 인권, 평화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기자말>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다음은 내빈 축사가 있겠습니다."
사회자는 <충북신보> 홍원길을 소개했다. 주간지인 <충북신보> 주간 홍원
릴게임온라인 길은 1948년 제헌의회 선거 때 청주에서 출마한 지역 유력 인사였다.
단상에 오른 홍원길은 연단 아래 보도연맹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과 일일이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여러분의 대표자인 신형식 간사장과 악수를 나누겠습니다."
그때까지 약간 긴장된 모습으로 단상에 앉아 있던
바다이야기게임장 신형식은 미소를 띠며 홍원길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간부 대부분이 반공투사
이어서 충북도청 공무원 엄철진의 선서 낭독이 있었다.
"선서! 엄철진 외 충북보도연맹원 일동은 확고한 반공정신으로 대한민국에 충성을 서약하겠습니다."
좌석에서
릴게임한국 일어나 있던 맹원들이 모두 따라 외쳤다. 마지막 순서로 보도연맹가(歌) 합창이 있었다.
"대한독립 만만세 기쁜 이 날에 / 나라 파는 새로운 적이 누구냐 / 너도 나도 합하여 힘을 합치면 / 삼천만이 다 함께 뒤를 따른다 / 빛나는 보도연맹 깃발 밑으로."
1949년 12월 13일 청주극장에서 '자수 전향자 선포대회'를
야마토연타 겸한 충북 국민보도연맹 결성식이 열렸다. 선포대회에는 중앙본부 간사장 박우천을 비롯해 이광 충청북도지사, 김윤수 청주지검 검사장 등 지역 내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자수자 수천 명이 모인 이날 행사는 마치 충북지역 좌익운동의 사망 선고를 공포하는 날처럼 느껴졌다.
충북보도연맹 간사장은 신형식(1911년생)이 맡았다. 그는 1932년 적우
릴게임5만 연맹사건으로 징역 5년을 복역했고, 1945년 11월 중순경 충북 청주로 귀환한 뒤 인민당에 가입했다. 이후 충청북도인민위원회, 조선공산당, 민주주의민족전선, 근로인민당 등에서 중요 간부를 역임했다.
그는 1946년 9월 근로인민당을 제외한 좌익정당 및 사회단체와 모든 관계를 끊는다는 탈퇴 성명을 발표했으며, 1949년 충북보도연맹 간사장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신형식을 제외하면 충북보도연맹 간부 모두가 좌익운동과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조직부장 이용규는 일제강점기 경찰서 사찰부장(고등계 형사) 출신으로, 해방 이후에도 사찰과 공작 주임을 맡았다. 감찰부장은 차근호였는데, 그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충북지부에서 활동했던 한독당 계열 인물이다.
선전부장 민한기는 유학생동맹 충북지부에서 활동했으며, 정보부장 박계택은 대한청년단에서 활동했고, 전쟁 중에는 부산에서 국민방위군 방위처장을 맡았다. 총무부장 김연호는 청년조선총동맹 2대 회장이었다(진실화해위원회, 청원 보도연맹사건 보고서, 2008; 동아대학교 산학협력단, '청원군 피해실태 조사보고서'; 김동수·최동찬 증언).
위 인물들을 살펴보면, 과거 좌익운동 전력이 있는 사람은 신형식뿐이며, 나머지는 현직 경찰과 우익청년단 출신 간부로 구성되어 있다. 즉 충북에서는 보도연맹 조직과 운영을 검찰과 경찰의 지도 아래 우익청년단 간부들이 실질적인 행동대장 역할을 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보도연맹은 어떤 단체이길래 주요 간부가 반공 투사 중심으로 구성된 것일까?
국민보도연맹은 관변 반공단체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해방 이후 이승만이 정권 유지를 위해 고안해 낸 좌익 전향 단체였다. 조직 명칭 자체가 '보호하여 지도한다'는 뜻을 가진 보도(保導)연맹이다. 그러나 보도연맹은 좌익 세력을 '교화'하거나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 그들을 '색출'하고 나아가 민족진영 등 반정부 세력을 단속·통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보도연맹은 이승만 정권의 독창물이 아니었다. 일제는 1937년 사상보호단체인 대화숙(大和塾)을 설치해 사상범을 무조건 가입시켰다. 이듬해에는 '사상보국연맹'이라는 기구를 만들고 사상범 통제를 강화했다.
결국 일제가 독립운동 탄압을 위해 고안한 수단을 이승만 정권이 좌익 척결과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보도연맹의 강령을 보면 단체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 오등(吾等)은 대한민국 정부를 절대 지지 육성을 기함
1. 오등은 북한 괴뢰정부를 절대 반대 타도를 기함.
1. 오등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배격 분쇄를 기함.
즉, 보도연맹은 반공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반공단체인 것이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4월 21일 서울시 경찰국 회의실에서 준비 회의를 거쳐 창설되었고, 같은 해 6월 5일에 명동 시공관(구 국립국장)에서 결성식을 열며 공식화되었다.
국민보도연맹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민족전선 중앙위원이자 조사부장이었던 박우천을 중심으로 한 좌익 전향자 단체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정부가 주도한 철저한 관변 단체였다.
행정부의 내무부가 주관하고 법무부, 검찰청, 국방부가 합동으로 참여했으며,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공조하는 조직 구성은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성격을 띠었다. 즉, 국민보도연맹은 표면적으로는 좌익전향자 단체였으나, 그 본질은 정부가 만든 관제 반공단체였다. 6.25를 겪은 세대들 사이에서 펴져 있는 '국민보도연맹=남로당=좌익'이라는 인식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민애청 명단이 고스란히
해방 이후 충북 청원군 오창에는 남로당 산하 조직인 조선민주청년동맹(이하 '민청')의 활동이 활발했다. 민청은 이후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이하 '민애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민청은 오창의 마을 단위까지 조직되었다.
마을 책임자들은 '공평한 세상, 토지 무상분배, 비료 배급, 품앗이' 등의 구호로 주민들을 민청(이후 민애청)에 가입시켰다. 이 단체들은 1947년 5월 17일 미군정 행정명령 2호에 따라 불법 단체가 된 후부터는 비합법적으로 은밀한 활동을 이어 갔다.
오창의 상당수 청년·농민들이 민애청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1949년 12월 충북보도연맹이 만들어지면서 이들은 보도연맹 가입 대상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보도연맹 가입을 권유하고 다닌 마을 간부들은 대부분 민청과 민애청의 마을 간부였다. 이는 보도연맹 가입 권유를 받았던 이들과 유족들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앞으로 좌익세상이 온다. 땅도 무상으로 나눠주고 공평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 못사는 사람들도 잘살게 해준다'고 가입하라고 하여 지장을 찍었지요."(전용찬)
"1946년 6월경 가족이 염병(장티프스)을 앓고 있어 누구도 집을 방문하지 않던 때,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여기에 도장을 찍어 주면 대신 모를 심어 주겠다'라고 하여 아버지께서 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최병곤)
"당시 마을에서는 좌익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면 비료 배급은 물론이고 품앗이를 안 해준다고 하여 가입했습니다." (임만호) / 진실화해위원회, '오창창고 보도연맹사건 보고서', 2007
이들의 증언은 민애청과 보도연맹 가입 권유가 뒤섞여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청·민애청·농민회에 가입했던 이들이 고스란히 보도연맹 가입 권유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때로는 강제로 가입되기도 했다.
민애청 남이면 북부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경찰에 자수한 뒤 남이면 석곡리(현 청주시 강서1동 석곡동) 보도연맹 소집책으로 활동한 박제순의 사례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전 민애청 맹원들을 대상으로 보도연맹 가입을 주도했다.
일명 '꽥꽥이'로 불렸던 청주시 내덕동 안터벌의 김희박도 마찬가지 사례다.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청주중학교 교사를 지낸 김희박은 민애청 청원군 북일면·북이면 총책임자였다. 그는 안터벌 주민들에게 보도연맹 가입을 권유했다.
남편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보도연맹 가입 경위는 다양하다. 위의 오창, 남이면 석곡리, 내덕동 안터벌의 경우처럼 민애청 맹원들이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례가 있다.
충북보도연맹 창설을 전후해 청주의 <국민일보>와 <충북신보>에는 남로당 탈당 성명서 광고가 쇄도했다. 전국적으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청원군 강외면의 남로당 탈당 성명서도 마찬가지이다. <경향신문> 1949년 11월 28일 자에 실린 이 광고에는 강외면 연제리의 남광희를 비롯해 정중리, 상정리, 궁평리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남로당 탈당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보도연맹원이 모두 과거에 좌익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좌익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내를 보도연맹에 강제로 가입시킨 경우도 있다.
"어느 날 집안에 할아버지뻘 되는 이가 남편에게 보도연맹 가입을 권유해 도장을 찍은 것이 화근이었어유. 남편이 몇 차례 보도연맹 모임에 참여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유. 그런데 어느 사이에 나도 보도연맹에 가입돼 있었어유."
▲ ?남편이 남로당원이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강제가입된 강영애
ⓒ 박만순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의 강영애는 남편이 남로당원이었다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도 가입되었다고 한다. 6·25전쟁 전에 월북했던 최동식의 아내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최동식이 월북하자 경찰은 청주 중앙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아내를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이른바 '할당제'로 가입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에서 지역별로 할당을 내려 보도연맹원 확대를 꾀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도연맹 가입서에 도장이 찍힌 경우도 있었다.
보련초(保聯草)
보도연맹이 결성된 후 청원군 일부 면에서는 보도연맹 사무실을 두었다. 남이면이 그런 경우였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에 보도연맹원들은 매달 1회 혹은 비정기적으로 소집되어 제식 훈련 및 반공 교육을 받았다.
오창 보도연맹원들은 매달 오창지서의 소집으로 오창 도로변 큰마당에 모여 제식 훈련과 반공 교육을 받았다. 마을 일을 보던 이가 징을 치면 그것이 보도연맹원 소집 신호였다.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구타를 당해야 했다.
청원군 강내면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당시 정부에서 국방 헌금을 걷었는데, 강내면에서는 보도연맹원들이 그 일을 떠맡았다. 방식은 보도연맹원들에게 산에서 아무 풀이나 뜯어 오게 한 뒤 한약재상들이 이를 주민들에게 강매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보련초(保聯草)'라고 불렸다.
또한 지서에서 나눠 준 삐라를 마을 주민들 집 대문에 부착하기도 했다. 내용은 김일성과 공산당을 욕하는 반공 삐라였다. 강내면 보도연맹원은 외지로 출타할 시 반드시 지서에 보고해야 했다. 그들은 간혹 청주의 보도연맹 사무실에 가서 반공 강연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