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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영씨 제공
서울에서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학우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캠퍼스를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한 학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이렇게 깜깜한데 대전까지 어떻게 가세요?”
그러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얘, 나는 낮에도 깜깜한데?”
그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시각장애인 심리상담가 김현영씨는 대전에서 장애인자립생활대학을 세운 데 이어 심리상담소까지 운영하며 장애인의 배움을, 마음을 격려하고 있다. 최근 자신의 인생 여정을 담은 ‘얘, 나는 낮에도 깜깜 신천지릴게임 한데?’(저녁달)를 펴낸 그를 지난 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발레 가르치던 40대 중반 시력 잃어 심리상담 매료…10년 만에 박사학위 2014년 장애인자립생활대학 설립해 장애인에 자립·동료상담 등 가르쳐
초등학생 시절 학예발표회가 계기가 되어 시작한 발레는 그에게 인생의 전부 같았다. 발레 전공으로 대학원 과정까지 마친 바다이야기고래 뒤 강의를 하고 공연도 하며 교수 임용을 준비하던 그는 30대에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았다. 의사들은 “결국 시각장애인이 될 것”이라며 장애를 대비하라고 했지만, 그가 달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장은 눈이 보이는데 맹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고, 안 보이는 것처럼 눈을 감고 살 수도 없잖아요?”
눈은 점점 나빠져서 결국 40대 바다이야기부활 중반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모든 일을 그만뒀고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과의 사이도 나빠졌다.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대전으로 훌쩍 이사한 이유다. 발레를 할 수 없는 삶은 그에게 의미도 쓸모도 없는 삶이었다. 의상과 소품 모두 버렸고, 토슈즈 한짝까지 남김없이 다 버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 릴게임야마토 었다는 절망감은 수시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원망할 대상이 없다는 점도 그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발레를 할 수 있도록 유복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원망할 수도,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신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평생 건강하시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역설적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제가 죽으려고 그렇 바다이야기부활 게 애를 쓰고 있었는데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누구나 죽는다는 걸 아주 깊게 깨달았어요. 특히 시각장애인이니까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고 그러니 정말 어느 순간 갑자기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냥 살아야겠구나, 이왕 사는 거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찾아가 점자와 컴퓨터, 보행교육 등의 기초 재활훈련을 받으며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렇다고 그 뒤로 우울과 절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리멸렬하게 점자를 한자씩 배워나갈 때 ‘우유’ 같은 단어 하나, 동화 한줄 읽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읽어서 어느 세월에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 모든 걸 내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침내 점자책을 읽게 됐을 땐 ‘나는 불이 필요 없는 여자구나! 어둠 속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네’ 하면서 웃을 수 있었다.
이후 공무원 시험에도 도전하고 시각장애인 볼링 선수로도 활약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동료 상담’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됐다. 그는 이 수업에서 위로와 격려, 용기를 얻으면서 상담에 크게 매료됐다. ‘이걸 배우면 나처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려대에 진학했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10년 이상 일주일에 세번씩 오가며 심리상담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교육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 과정에서 2014년엔 대전에 장애인자립생활대학을 설립해 장애인들에게 장애학과 자립, 동료상담과 인문학 등을 가르쳤고, 2020년엔 ‘김현영심리상담연구소’를 열었다. “장애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과 장애 관련 종사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심리 상담이 절실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꾸준한 상담뿐만 아니라 심리적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도 시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상담실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찾아온다. 상담할 땐 시각장애가 오히려 강점이 됐다. “내담자들은 제가 자신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껴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담자들이 많으니까요. 마치 산부인과 의사를 밖에서 마주치기 싫어하는 마음과 비슷하달까요? 저는 상담실 밖에서 그들을 알아볼 수 없으니 부담이 없죠.”
2020년부터 심리상담연구소 운영 “후천적 장애인 70%가 집에 은둔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돕고 싶어”
그를 찾은 장애인 내담자의 대부분은 그처럼 후천적 장애인이다.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해 우리나라 장애인의 약 90%가 후천적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후천적 장애인은 선천적 장애인보다 훨씬 더 심리적 고통과 좌절이 크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그의 진단은 다르다. “많은 분들이 장애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만, 상담을 해보면 장애 이전부터 이미 삶을 어렵게 하던 문제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요. 관계나 가족, 소통의 영역에서 쌓여온 갈등이 있는데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장애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는 그것을 섣불리 말하는 대신 질문을 통해서 내담자가 자신의 본질적인 문제와 마주하도록 돕는다.
그가 말하는 상담의 매력은 명확하다. “아주 작은 눈빛, 표정, 몸짓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어 꽁꽁 얼어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려 소통이 시작된다는 데 있죠. 그 결과 상담은 한 사람을 바로 서게 해줍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한 발짝 내디딜 수 있도록 돕는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후천적 장애를 겪으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원망하게 됩니다. 마치 나에게만 그런 일이 생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일은 생기거든요. 후천적 장애인의 70%가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재가 장애인입니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도록 돕고 단계적으로 심리적 지원을 해주는 센터를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