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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종말을 다루는 문화콘텐츠가 늘었다는 생각은 인상평에 지나지 않지만, 실태와 영 동떨어진 착시도 아닐 것 같다. 아포칼립스(Apocalypse)라는 말은 기독교 종말론 교리의 바탕이 된 예언서 요한계시록의 영어명인데, 업계에서는 여기에 접두사 ‘포스트’(post)를 붙여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용어로 종말과 종말 이후의 서사를 다룬 창작물을 묶는다. 영화든 게임이든 소설이든,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이든 소행성의 충돌이든 이때의 파국이란 어떤 식으로든 현세에 관한 알레고리로서 각자 설득력과 깊이를 얻는다. 그러므로 콘텐츠 바다신게임 시장에서 재난과 종말에 관한 수요와 공급이 상승곡선을 그릴 때는, 동시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실감하는 실제 세계의 망조가 선명해진 탓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상투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표어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다. 보통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릴짱 (1632∼1677)의 것으로 인용되곤 한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거시적인 파멸의 운명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도모할 것인지 그 행동 지침에 관한 격언으로, 구체적인 뉘앙스는 저마다 강조하기 나름인 듯 보인다. 최후의 순간까지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으리라는 각오일 수도 있고, 체념을 받아들이는 대신 마지막 순간의 쓸모를 내면의 평화를 가꾸는 데서 찾아보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자는 묵상일 수도 있고, 제아무리 막대한 규모의 재난 앞에 서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실천부터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좋으나, 이 선문답 같은 문구의 참뜻에 관해서는 일단 괄호를 쳐두는 수밖에 없다. 출처 불명이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이 말을 신학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것으로 안다. 소싯적 루 릴게임종류 터가 사숙했던 독일 튀링겐 주 아이제나흐에는 ‘루터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있는데, 그 앞에 한 그루 사과나무와 함께 “만약 내가 내일 세상이 끝날 것이라 믿는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루터의 어록으로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다만 이쪽도 문제는 출전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생전 수만 쪽에 달하는 저술을 남긴 루터의 글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어디에서도 그러한 문장은 발견되지 않으니, 지금은 이러한 팩트체크를 반영하여 루터하우스 안내판도 수정된 상태라고 한다.
구글맵스를 통해 본 독일 튀링겐주 아이제나흐의 루터하우스 앞 사과나무. 구글맵스 갈무리
루터하우스 박물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오해의 시발점은 나치가 독일을 장악했던 20세기 중반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반나치 프로테스탄트 운동 세력인 ‘고백 교회’(confessing church)가 암약하였는데, 1944년 그 일원이었던 목사 카를 로츠가 헤센 지역의 동료들에게 “우리는 분명 루터의 말을 따라야 한다. 세상이 내일 끝난다 해도, 우리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고자 한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독려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이것이 언론, 종교, 정치, 문학 각계로 퍼지며 루터의 말로 자리 잡고 루터하우스 입구의 사과나무 가로수로 이어졌으니, 로츠 목사는 독일인들의 관념 속에 첫 번째 ‘루터의 사과나무’를 심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을 벗어나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이 문장이 한국에서는 뜬금없이 스피노자의 것으로 유포되고 속담에 준하는 성공적인 명구로 정착한 상황은 희한하다. 명확한 수입 경로를 확정 짓긴 어려우나, 인터넷을 뒤져 확인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일보에 있다. 1962년 4월5일자 조선일보 ‘만물상’ 코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렸다.
“일 년 중을 통해서 여러 가지 기념행사와 축제가 있지마는 가장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식목일 같다…(중략)…‘비록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스피노자인가 누군가가 말했다지만 사과 먹고 싶어서 한 말은 물론 아니다. 나무를 심는다는 거룩한 뜻, 비록 세계의 종말이 내일 온다 치더라도 나무를 심겠다는 것은 식목이라는 것을 거의 목적과 효용을 초월한 지선으로 높인 것이다.”(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정확히 2년 뒤 조선일보는 다시 식목의 의의를 되새기며 사설에 “일찍이 서구의 철인 스피노자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였다. 먹을까 말까 한 열매라고 집어치울 것이 아니라 생명이 유지되는 한 할 일은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해석하고 싶다”라고 썼다. 이후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는 경향신문(1966년 7월23일), 동아일보(1967년 1월9일), 매일경제(1969년 4월16일) 등으로 옮겨 심어졌다. 말이 워낙 매력적이니 인용의 유혹이 작지 않았겠지만, 출처 비스름한 것도 귀띔하는 법 없이 스피노자와 엮어버리는 대범함에 한국인이 통째로 속아 넘어간 모양이다. ‘스피노자인가 누군가가’라는 구절이 기원의 전부라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문구도 발견된다. 1970년 6월11일자 매일경제에 나오는 “마르틴 루터가 즐겨 인용하던 스피노자의 명언”이라는 글귀인데, 스피노자가 루터보다 150년 후대의 사람이므로 ‘루터가 즐겨 인용하던 스피노자의 명언’이라는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1962년 4월5일자 조선일보 ‘만물상’.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1970년 6월11일자 매일경제신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당연히 스피노자의 저작 어디에도 사과나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떤 이들은 비록 스피노자가 말의 저작권자는 아니지만 흔히 범신론으로 요약되는 그의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제법 어울리는 격언이긴 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시야비야 따지기 어려운 의견이지만, 스피노자에 관해서는 부연해둘 필요가 있겠다.
범신론은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생각의 체계를 가리키는데 그 양태에 따른 차이가 상당하다. 범신론 안에서도 신을 끌어들여 자연을 신비화하고 추앙의 대상으로 삼는 유신론적 범신론이 있는가 하면, 신을 자연으로 환원하여 과학의 대상으로 객관화해버리는 무신론적 범신론이 있으니, 스피노자는 후자에 가까웠다. 신에 대해 말하면서 결국 우주를 소명하고자 했던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은 세계의 창조주로서 의인화된 신이라는 관념을 뿌리부터 해체하는 반동적 논변이었고, 당시 유럽의 지적·정치적 권위를 독점하였던 교회와 주류 철학의 사상이라는 것이 결국 신앙에 기초한 미신의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논증하는 데 뜻을 둔 기획이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스피노자를 “근대 초기 주요 철학자 중에서도 결단코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라고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스피노자는 신이나 자연 앞에서 숭배적 경외나 종교적 공경이 적절한 태도라고 믿지 않았다. 자연에는 신성하거나 성스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자연은 결코 종교적 체험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명석한 지적 인식을 통해 ‘신 또는 자연’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스피노자에게 신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열쇠는 종교적 경외나 복종이 아니라 철학과 과학이다. 전자는 오직 미신적 행태와 교회 권위에 대한 예속 만을 낳는 반면, 후자는 계몽, 자유, 그리고 참된 복됨(마음의 평정)으로 이끈다.”
이를테면, 자신의 불행을 신의 섭리에 따른 인과응보로 여기고 보다 신실하고 경건한 믿음을 입증함으로써 어떤 보상을 탐하는 태도는 우주의 실상과는 아무런 교점을 갖지 않는 것으로, 세계를 오독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원인이 되는 외부 세계의 사건은 지난한 인과의 연쇄 작용을 통해 우연히 발생한 일에 불과하니, 우주(신)란 본래 어떠한 목적성도 없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점을 이성적으로 납득하는 길에 지복(至福)으로 향하는 문도 놓여 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학설이 인생에 더없이 유용한 실용적 지혜라고 당부했다. 네 가지 측면에서 그러한데 ①우리의 행동이 우주(신)의 필연적 질서에 따른 것임을 깨달아 내적 평정을 얻을 수 있다는 점 ②통제 밖의 시련을 견디는 방법을 일러준다는 점 ③타인을 미워하고 업신여기고 비웃을 필요가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점(사회생활) ④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민주주의)(‘에티카’, 2부 정신의 본성과 그 기원에 관하여, 정리49의 주해) 등이다. 그러므로 만일 지구의 멸망을 앞두고 사과나무를 심는 행동이 이와 같은 인식론의 발로라면, 그것은 스피노자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운명은 바꿀 수 없지만 이 순간 나의 행위와 감정은 통제 가능하니, 그것이 기도, 혹은 절망이나 체념이 아니라 통달(洞達)의 산물인 한에서 우리는 스피노자적으로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다. 그곳에는 기적도 구원도 없지만, 필연적으로 평화와 자유가 있을 것이다.
▶박강수의 허언록은?
곡해, 도용, 날조, 과장, 오역 등 비틀린 말의 사정을 추적하는 에세이입니다. ‘잘못 알려진 명언’의 말 못 한 사정을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박강수의 허언록(https://www.hani.co.kr/arti/SERIES/3309?h=s)에서 읽어보세요!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