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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명현혜달
작성일 : 2026.02.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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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 기자]
▲ ?<잉글리시 게임>의 퍼거스 수터(케빈 거스리)와 지미 러브(제임스 하크니스). 실제 이들은 스코틀랜드에서 영입된 최초의 축구선수였다.
ⓒ 넷플릭스
"FA컵은 1년에 한 번 오 황금성릴게임 는 기회야. 내일 경기에 안 나가면 끝이라고!"
"넌 아직도 돈 받지? 넌 걱정이 없잖아. 월시가 챙겨주니까. 그런데 우리는?"
훈련에 나오지 않은 동료들을 나무라는 퍼거스 수터를 향해, 다웬FC 주장이자 공장 노동자 토미 마셜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수터는 같은 팀원이었지만 이방인에 불과했다 손오공게임 . 다웬 노동자들에게 그는 단지 축구를 하려고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품팔이'에 지나지 않았다.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주 다웬, 이곳 노동자들은 얼마 전 공장주 길드에서 결정한 임금 삭감에 맞서 파업을 결정했다. 5% 삭감도 모자라 10% 추가 삭감 소식이 들리자 축구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 상황이 황당하기만 릴게임사이트추천 한 퍼거스 수터와 지미 러브. 오로지 축구를 위해 이곳에 온 두 사람에게는 파업이 아니라 내일 경기 취소가 더 큰 걱정이었다. 파업으로 경기가 무산된다면, 지난 1년 동안 갈망해 온 FA컵 우승의 꿈이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수터는 동료들에게 FA컵의 중요성을 설파하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공장주가 자신들의 임금을 깎아 지급한 바다신릴게임 월급으로 축구만 하는 이들이 반가울 리 없다. 노동자 계급이지만 처지가 다른 수터와 지미는 철저한 경계인일 뿐이었다.
그깟 공놀이,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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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잉글리시 게임>. 축구를 통해 계급과 시대를 조망하는 영국 드라마다.
ⓒ 넷플릭스
축구, 제한된 시간 안에 공을 상대의 골대에 넣은 쪽이 승리하는 게임. 어떤 운동보다 단순한 룰을 가진 축구는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다. 손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위를 동원해 달리고 점프하고 부딪히며 본능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매력이 가득하다.
공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한 이 놀이가 지금은 전 세계 수백조 원의 돈을 움직이고 있다. 때론 광장을 붉은 함성으로 물들이고 때론 총성을 잠재우며 수억 명의 희열과 탄식을 자아낸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된 국가가 무려 211개국. 유엔 가입 국가보다 많다고 하니, 인류가 있는 곳에 축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축구의 규칙이 최초로 정립된 곳이 영국이다. 영국 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는 1863년 10월 26일, 런던의 펍, 프리메이슨스 타번(Freemason's tavern)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축구의 룰을 제정했다.
이들은 지역마다 다른 규칙을 통일하면서 협회 축구(Association Football)라는 새로운 게임 룰을 발표했다. 럭비 축구(Rugby Football)와 달리 손 사용과 정강이 태클을 금지하고 골의 개념을 정확히 하는 것이 협회 축구 룰의 주요 골자였다.
하지만 당시 FA는 지금의 모습과 달랐다. 협회를 주도한 인물들은 모두 귀족 중산층이었다. 초대 회장 아서 펨버와 사무총장 에베니저 콥 몰리는 모두 변호사 출신이었고 회원은 이튼 스쿨 같은 사립학교를 나온 귀족층의 자제들이었다. 이들에게 축구는 골프와 테니스처럼 여가 시간에 즐기는 취미 중 하나였다.
FA컵의 창설
▲ ?영국 축구 협회가 탄생한 프리메이슨스 타번을 그린 수채화. 현재는 다른 이름으로 존재한다.
ⓒ 위키피디아
FA가 룰을 제정했음에도 축구는 여전히 제각각이었다. 소수 귀족 팀으로는 협회의 권위를 세울 수도 없었고 규칙의 실효성도 보장할 수 없었다. 룰은 생겼지만 이 게임을 지속시킬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1871년 당시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찰스 윌리엄 앨콕은 파편화된 경기 운영의 한계를 타파하고자 FA컵 창설을 제안했다. 친선 경기 수준에 머물렀던 축구에 노동자 팀을 허락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한 선구적 조치였다.
초기에 발송된 50여 통의 초청장 중 응답이 돌아온 곳은 12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모두 귀족과 군인, 관료로 이루어진 팀들이었다. 운동은 노동자들에게 사치에 가까웠다. 하루 12시간, 주 6일 노동을 하는 그들에게 대회까지 참가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뒤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1879년 공장 노동자들로 꾸려진 다웬FC가 8강에 올라 당대 최고의 귀족 팀, 올드 이토니언스와 맞붙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코틀랜드 용병, 퍼거스 수터와 지미 러브가 있었다.
최초의 프로 축구 선수, 퍼거스 수터
▲ ?퍼거스 수터의 사진. 영화에서는 1882년 결승전에서 우승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1884년이 되어서야 블랙번 로버스 소속으로 첫 우승컵을 들었다.
ⓒ 위키피디아
'잉글리시 게임'은 영국의 최전성기였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귀족의 놀이였던 축구가 노동자의 품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는 1879년 올드 이토니언스와 다웬FC의 8강 경기로 시작한다.
팀명에서 알 수 있듯, 올드 이토니언스는 영국 최고 명문, 이튼 스쿨을 졸업한 귀족 자제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명실상부한 강력한 팀으로 올해도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다. 반면, 이에 맞서는 다웬FC는 노동자 팀으론 처음 8강에 진출해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팀이었다.
다웬 면방직 공장의 사장이자 다웬FC 구단주인 제임스 월시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올드 이토니언스를 이기고 FA컵 우승을 하려고 했다. 노동과 가난에 지친 다웬 사람들에게 축구가 희망의 구심점이 되리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는 계급 사회인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귀족들과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다. FA컵은 귀족에 대한 근원적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는 자본가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부유해도 귀족이 될 수 없는 그들에게 경기장 선수들은 자신을 대리해 귀족과 싸워주는 전사들이었다.
한때 노동자였던 월시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한 도박을 감행한다. 스코틀랜드 최고 선수로 평판이 자자했던 퍼거스 수터를 돈을 주고 데려온 것이다. 스포츠 역사상 승리를 목적으로 선수를 고용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는 FA 룰을 어긴 명백한 불법이었다. 협회는 돈을 받고 축구를 하는 전업 선수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터와 러브가 8강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설령 전업 선수라고 해도 자신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귀족들의 폄훼 때문이었다.
게다가 올드 이토니언스에는 아서 키네어드가 뛰고 있었다. 이튼 스쿨과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키네어드는 골키퍼부터 수비수까지 볼 수 있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전반전은 모두의 예상대로 5:0으로 끝났다. 키네어드는 강력한 드리블로 허술한 상대의 수비를 박살 냈다. 하지만 손쉽게 다웬FC를 이길 것이라는 예상은 수터가 주장이 되면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19세기 영국 축구는 드리블 위주의 플레이 스타일을 추구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수터는 이 점을 역이용했다. 패스 플레이로 올드 이토니언스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팀원을 넓게 벌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패스를 뿌리며 공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후반전, 다웬FC는 이 전술로 단번에 5점을 만회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전술에 진땀을 빼던 귀족 선수들은 간신히 추가 점수를 막아내며 동점으로 게임을 마쳤다.
문제는 이제부터. 연장전을 요구하는 다웬FC에게 올드 이토니언스는 다음 주 재경기를 선언했다. 재경기는 다웬에게 불리했다. 런던까지 다시 오는 시간과 돈, 체력까지 고려하면 유리할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연장전은 선언되지 않았다. 올드 이토니언스에는 FA 협회장이던 프랜시스 마린딘이 선수로 뛰고 있었다. 결국, 재경기에서 다웬FC는 패배했고, 올드 이토니언스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고단을 달래는 맥주
<잉글리시 게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1879년 다웬과 올드 이토니언스의 8강전도 실제 있었던 경기다. 드라마 속에서는 축구라는 동일한 스포츠를 두고 서로 다른 환경을 사는 여러 계급들의 삶도 볼 수 있다.
올드 이토니언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저택에 모여 프랑스 마고 와인에 곁들여 식사를 하며 여가 시간을 즐긴다. 규칙적으로 연습하며 충분한 휴식도 취한다. 반면 다웬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고되다. 긴 노동 후 지친 이들을 반기는 건 동네 펍에 모여있는 동료들과 맥주뿐이다.
이들이 마셨던 맥주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포터 아니면 마일드 에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마일드 에일은 숙성 기간이 짧아 신선하게 즐기는 맥주였다. 낮은 알코올에 바디가 가벼워 마치 물처럼 마실 수 있었다. 가격 또한 저렴해 노동자의 갈증과 피곤을 해소시켜 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경기 후, 파업을 결정할 때, 그리고 결혼식까지 맥주는 늘 곁에 있었다.
노동자의 팀, 우승하다
▲ ?1884년 FA컵 우승을 달성한 블랙번 로버스. 가운데 수염을 가진 남자가 퍼거스 수터다. 이 우승을 기점으로 블랙번 로버스는 3연속 우승을 달성한다.
ⓒ 위키미디어 공용
퍼거스 수터의 등장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FA컵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전업 선수의 힘을 목격한 자본가들은 패스 축구를 구사하는 스코틀랜드에서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 중심에 블랙번이라는 도시가 있었다.
랭커셔주 블랙번은 세계 최대 면방직 산업 도시였다. 공장주들은 노동자의 여가와 단합을 위해 축구를 활용했다. <잉글리시 게임>에서는 1880년 블랙번의 구단주, 존 카트라이더는 당시로는 거금 100파운드에 퍼거스 수터를 영입하는 모습이 나온다. 분노하는 다웬 시민들을 뒤로하고 수터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기꺼이 블랙번의 유니폼을 입는다.
2년이 흐른 뒤, 다수의 전업 선수가 뛰는 블랙번은 올드 이토니언스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다. 노동자 팀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FA는 프로 선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들어 블랙번을 자동 탈락시키려 하지만, 아서 키네어드는 그 결정이 신사답지 못하다며 철회를 요구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이 랭커셔를 중심으로 새로운 축구 협회를 만들겠다는 협박과 함께.
1882년 드디어 성사된 블랙번과 올드 이토니언스와의 결승전. 이 경기는 퍼거스 수터와 아서 키네어드 사이에서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리턴매치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터의 결승 골에 힘입어 블랙번은 역사상 최초로 FA 우승컵을 차지하게 된다(드라마상 각색이며, 실제로는 퍼거스 수터가 뛰고 있던 블랙번 로버스는 1884년에 첫 우승을 했다).
어두운 펍에서 주철 잔에 맥주를 마시는 노동자들이 화려한 저택에서 프랑스 와인을 마시는 귀족들을 무너뜨린 최초의 사건이었다. 귀족들이 만든 축구가 노동자의 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초록색 피치 위에서만큼은 귀족과 노동자, 모두 동등하다는 선포이기도 했고.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스포츠
▲ ?아서 키네어드 경. 영국 축구의 전설적인 인물로 현대 축구 기틀을 쌓은 인물이다. 1890년부터 33년간 영국 축구 협회장을 맡았다.
ⓒ 위키피디아
"축구를 노동자 계급에게 주자는 것인가?"
"축구를 노동자 계급과 공유하자는 것이네."
드라마에서 축구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FA 회장 마린딘에게 키네어드는 노동자 계급을 품자고 설득한다. 그는 더 이상 축구가 귀족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 축구 협회는 1885년 축구의 프로화를 공식 승인했다. 이에 반발한 귀족 팀들은 FA를 탈퇴하며 순수한 동호회 팀으로 남았다. 그 뒤에는 아서 키네어드가 있었다. 그는 1890년 FA 회장이 되어 1923년 사망할 때까지 33년 동안 현대 축구의 기틀을 닦고 대중 스포츠가 되는데 평생을 헌신했다.
영원한 라이벌 퍼거스 수터는 1880년대 후반 블랙번 로버스에서 은퇴한 뒤,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살다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둘은 출신도 계급도 달랐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동등한 인간이자 시대의 동반자였다.
잉글리시 게임은 승패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다. 축구를 매개로 계급의 벽을 허물고 연대를 이끌어낸 140년 전 선구자들의 기록이다. 초록색 피치 위에 흘린 땀방울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이 단순한 공놀이에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보여준 열정과 투지에 우리는 공감하고 감동한다.
그래서 맥주는 축구와 깐부일 수밖에 없다. 맥주는 패배를 견디고 다시 모이게 하는 힘이었다. 노동자들이 펍에서 나눈 맥주가 축구를 모든 사람의 스포츠로 만들었다.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 길을 먼저 걸어갔던 수터와 키네어드를 위해 건배.
덧붙이는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