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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명현혜달
작성일 : 2026.02.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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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에서 끊겼다가 성북역사문화공원에서 다시 시작되는 한양도성에 아침햇살이 드리우고 있다.
북한산성과 탕춘대성, 한양도성까지 '한양의 수도성곽'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한다. 올 2월에 신청서를 내면 여름에 현장실사단이 와서 2개월간 세밀하게 살펴보고, 최종적으로는 내년 7~8월 본회에서 등재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확률은 매우 높다는 후문. 오며가며 늘 보던 산성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누구보다 더 감회가 새로운 이들이 있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지난 15년간 노력한 이들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이다. 서울시, 고양시 등 정부부터 학계, 시민단체까지 다양하다.
그중 한 곳이 서울KYC다. 이들은 산성으로 따지자면 성벽 가장 아래에 있는 성돌이다. '도성길라잡이'라는 자원활동가를 매년 양성해 시민들에게 도성의 가치와 역사를 현장에서 설명하는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다. 수도성곽에 대한 학술적으로 심오한 연구가 있어도 시민들에게 전 골드몽릴게임 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신념 하나로 보수는 하나도 받지 않고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도성길라잡이 방규원 대표와 함께 유네스코 등재에 도전하는 수도성곽 일부 구간을 같이 걸어봤다.
한양도성은 한 공간에 조선 태조 때 쌓은 돌과 현대에 쌓은 여장이 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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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로 성벽이 쌓인 연도 예측하는 법
한양도성은 도읍을 감싸는 내사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따라 지은 총 18km의 성곽으로 현재는 70% 정도만 그 형체가 보존됐거나 새로 수리돼 남아 있다. 가장 오랜 기간(514년) 수도를 지킨 성이란 기록을 갖고 있다. 북한산성은 북한 온라인릴게임 산 심부 계곡을 감싸는 능선 12.7km에 건설돼 있고, 탕춘대성은 이 둘을 잇는 5km의 성이다.
성북역사문화공원에 들어선 서울 한양도성 안내판.
이러한 한양의 수도성곽은 산꾼들과 걷기여행가들에게도 친숙한 공간이다 골드몽릴게임릴게임 . 한양도성은 이를 따른 도시걷기길이 잘 조성돼 있으며, 북한산성은 곳곳에 있는 성문을 일시에 순례하는 12~14성문 종주의 인기가 높다. 두 성에 비해 비교적 이름값이 덜 알려진 탕춘대성도 향로봉으로 올라붙는 능선 코스를 끼고 있어 북한산을 자주 찾는 등산객들에겐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 익숙한 길이라 더더욱 수도성곽의 가치를 짧고 굵게 보기 위해선 어딜 걷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됐다. 방 대표는 단번에 답을 줬다. 그는 한양도성만 100번 넘게 돌았다고 했다.
"한양도성과 탕춘대성을 같이 걷는 코스로 가시죠. 북악산과 인왕산을 이어 걸으면 됩니다. 태조 이성계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듯 수도성곽도 마찬가지다. 그 역사는 성벽처럼 첩첩이 쌓여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성의 흔적이 약간은 남아 있었다고 하며, 현재처럼 본격적인 성곽의 형태를 이룬 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조선시대에도 특정 임금이 한 번에 완성한 것이 아니다. 태조가 한양도성을 쌓고, 세종이 중건하고, 숙종이 대대적으로 재건축하며 순조도 손을 댔다고 한다.
탕춘대성을 따라 북한산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능선 거의 끄트머리부터 제대로 된 성곽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해 홍지문을 거쳐 능선을 따라 오른다.
현대사에서도 성곽 건축은 계속됐다. 박정희 대통령 때 김신조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 방어와 문화재 복원까지 겸사겸사할 목적으로 성벽이 다시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성벽을 따라 걷기꾼들이 걷는다.
1월 어느 날 이른 새벽, 아직 성벽에 아침햇살조차 드리워지지 않을 무렵에 성북역사문화공원에 섰다. 성벽의 옆구리가 시루떡을 잘라놓은 듯 훤히 드러나 있다. 혜화문에서 끊긴 한양도성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돼 산을 타고 흘러 경희궁 지척까지 이어진다. 환하게 인사를 건네는 방 대표의 배낭에는 수없이 많은 한양도성 와펜이 붙어 있다.
"저희 도성 길라잡이들은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늘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문화재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에서 출발했죠. 공무원들이 할 수 없는 일 중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민 하나하나에게 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하게 되면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겠다는 답을 내렸어요. 그 이후 지금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한양도성을 4개 구간으로 나눠서 한 개 구간을 3~4시간 정도 시계 방향으로 시민들과 같이 걷고 있습니다."
탕춘대성의 대표 문인 홍지문과 오간수문. 1920년 홍수로 유실됐던 걸 1970년대에 복원했다.
자원봉사다. 돈은 받지 않는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활동가는 1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영어나 독일어 해설도 가능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조건은 있다. 교육을 들어야 한다. 각 대학교의 저명한 교수들과 전문가들, 역사학자, 작가 등이 전하는 시민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자 이제 백악산으로 갑시다."
"북악산이 아니고요?"
북악산의 조선시대 명칭이 백악산이란다. 그땐 암릉이 도드라져 백白자가 붙었다가 도성의 북쪽에 있어 북악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산도 원래는 목멱산이고, 낙산은 낙타를 닮았다고 해서 낙타산, 혹은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이 있어 타락駝駱산으로 불렀었다. 같은 장소에 시간이 쌓이면 일어나는 일이다. 성벽도 마찬가지다.
"1392년에 이성계가 개국을 하고 1394년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깁니다. 그리고 얼마 뒤 종묘 사직과 경복궁, 그리고 한양도성을 건축하게 되죠. 이후 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도성은 변모하게 되죠. 무너진 곳을 새로운 기술로 쌓기도 하고, 보수가 필요한 곳에 새 돌을 넣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도 같은 성벽에 여러 시대가 같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 대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이 그랬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더 복잡하겠지만, 일반적 수준에서 구분하는 방법은 이렇다. 확실히 낡았고 돌들이 메주처럼 자그마하거나 길쭉한 모양새라면 초기에 쌓아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이건 현대 기술로 만들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네모반듯한 돌들은 조선 숙종이나 순조 때 만든 후기 작품이다. 채석장에서 돌을 반듯하게 잘라낸 뒤 군인들이 옮겨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이 돌을 본 뒤 성벽 맨 윗부분에 '여장'이라고 해서 총이나 화포를 쏠 수 있게 구멍이 나 있고 지붕이 씌워진 구조물들을 보면 '아 비교해서 보니 알겠네. 이건 진짜 현대 기술로 만든 거다'란 생각이 들게 자로 잰 듯한 테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설물은 대부분 박정희 대통령 때 복원한 것이라 얼추 맞다.
"여장에는 구멍이 총 3개 있어요. 가운데는 근총안, 양쪽은 원총안입니다. 가운데는 가까운 적을 쏘는 용이고, 양쪽은 멀리에 있는 적을 총으로 쏘기 위해 만든 것이죠."
직접 몸을 숙여 들여다보니 맞추기 쉽지 않겠단 생각이 먼저 든다. 그냥 성벽 위로 몸을 드러내고 쏘는 게 편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가, 뒤이어 전쟁드라마에서 꼭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러다가 죽었던 몇 인물이 떠올라 조상들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마무리했다.
"여장 위에 지붕처럼 덮은 돌은 옥개석이라고 불러요. 1차적으로는 성벽을 이루는 바위 틈 사이로 물이 흘러들어가지 않게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이 들어가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무너질 우려가 있어서 그렇죠. 전시에는 또 다른 일을 해요. 성벽 가까이 적이 붙으면 이걸 그대로 밀어서 머리 위로 떨어뜨립니다. 낙석으로 공격하는 거죠."
어떤 옥개석은 테두리 아래쪽을 따라서 홈을 쭉 파놓기도 했다고 한다.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돌을 따라 흘러 성벽 쪽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떨어지게 만드는 선조의 지혜가 반영된 것이다.
북악산 진짜 명당은 '촛대바위'
방 대표의 해설이 큰 돌덩이로만 여겨졌던 성벽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도성을 안으로 걷다가 밖으로 걷다 하니 여명을 받아 성이 붉게 물든다. 아름답다. 성이 500년 넘게 속에 품고 지켜온 도시도 잠에서 깨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북악산은 조용해졌다. 몇 년 전 재개방됐을 때 야심차게 문을 열었던 말바위 안내소는 지난 2년간 폐쇄된 채 방치됐다고 한다. 다른 안내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다시 생명력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길은 숙정문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북대문이다. 사대문 중 문 양옆이 성벽으로 이어진 것으론 유일하다. 숙정문 현판은 왼쪽부터 읽도록 돼 있다. 현대에 만들었다는 의미다. 방 대표는 "사람이 다니는 문이 아니었다"고 했다.
한양도성에서 바라본 성북동. 부촌과 서민 마을이 공존하는 성북동 특유의 독특한 마을 형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성북동에서 궁궐로 갈 때 굳이 힘겹게 고개를 올라 이 문을 지날 필요가 없어 보이죠? 옛날에도 그랬대요. 혜화문을 거쳐서 갔죠. 예전에는 늘 이 문을 굳게 닫아뒀다고 합니다. 북쪽으로 음의 기운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녀자들이 바람나지 않게 닫아놔야 한다고 믿었다고 해요. 하지만 열 때가 있었죠. 기우제를 지낼 때에요. 그땐 음의 기운이 들어와 비를 내리게 해야 한다고 숙정문은 열고 숭례문은 닫았어요. 기청제는 반대로 했죠."
숙정문. 한양도성의 북대문에 해당한다.
괜히 음의 기운이 세다니 겨울바람이 더 차게 느껴진다. 옷깃을 여미고 성벽에 붙어 길을 잇는다. 차츰 고도가 올라가자 수도 서울의 풍광이 점점 더 훤칠해진다. 등산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촛대바위'가 있다는 이정표에 이르러서 갈지 말지 고민하는데 방 대표가 등을 떠민다.
"여기가 진짜 명당입니다. 가서 보면 알아요."
20m쯤 걸어가자 촛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방 대표는 여기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더 이끈다. 시내 방면으로 넓게 조성해둔 데크가 목적지다. 그의 손을 따르자, 그곳에 경복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악산 촛대바위에서 바라본 경복궁과 세종대로.
"여기가 북악산에서 경복궁, 근정전과 광화문, 세종대로를 일직선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북악산 정상이 정북방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곳이 진짜 명당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곳에서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참, 음주는 절대 금물입니다. 어떤 분들은 국립공원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적지라 법으로 금지돼 있어요."
위풍당당한 궁궐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북악산 하이라이트는 이제 시작이다. 청와대와 백운대의 이름을 한 자리씩 땄다는 청운대, 북악산 정상 등 조망이 시원하게 열리는 포인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곡성이다. 효과적으로 산성을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성벽 일부분을 돌출시킨 지형이다. 이곳에선 북한산 주능선도 한눈에 담을 수 있으며, 남산타워, 경복궁 등 서울의 주요 랜드마크를 멋들어진 곡선을 이루며 굽이치는 한양도성과 함께 바라볼 수 있다.
한양도성 북악산권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볼 수 있는 곡성. 구불구불 이어지는 한양도성과 함께 서울 시내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인왕산 자체가 성이다
이제 능선을 따라 창의문으로 내려선다. 내리막길에선 평창동이 한눈에 보인다. 이름이 창고란 뜻을 머금고 있는 건 북한산성이 만들어졌을 때 이 마을부지에 무기와 식량을 보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부촌의 명성을 얻은 건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의도적으로 개발하게 된 이후다.
무기와 식량을 보관했던 평창동과 그 너머 북한산. 능선 너머에 북한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창의문은 특이한 점이 몇 개 있어요. 여기 현판 뒤에는 인조반정 당시 공신들 45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 반정을 일으킨 병사들은 창의문을 돌파해서 창덕궁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현판을 잘 보면 급이 나뉘어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공에 따라 1등부터 3등까지 나눴다고 합니다. 자기가 세운 공이 제법 큰 것 같은데 제대로 칭찬을 못 받으면 화가 날 수 있겠죠? 이괄이 그랬습니다. 난을 일으켜 도성 장악까지 성공했으나 끝내 토벌 당했죠."
인센티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으며 이제 인왕산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들머리다. 언덕 아래는 자하문터널이 지난다. 방 대표는 "자하는 개성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개성에 자하동이라는 양반들이 사는 부촌이 있었는데 그곳이 평창~구기 일대의 지형과 닮았다고 해서 이곳에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X리단길이니 X트럴 파크니 갖다 붙여 부르던 것도 나름 전통 있는 행위였다.
인왕산 능선으로 성벽을 따라 오른다. 줄곧 계단이다. 날이 추운 탓인지 사람이 거의 찾지 않아 등산로에 쌓인 눈이 거의 그대로다. 방 대표는 "여기에 각자성석이란 것이 있다"고 일러준다. 자세히 보니 성벽에 이름을 새겨 넣은 흔적이다. 흔한 낙서가 아니다. 해당 구간의 성벽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공사를 감독한 사람, 돌을 만든 사람 등이다. 한양도성 전체에 이런 흔적이 280여 개 이상 있다. 이렇게 관리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놓은 탓에 해당 구간이 무너지면 그 책임자를 정확히 불러서 A/S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의 후손을 찾을 수 있을까? 방 대표는 "그건 아마도 힘들 것"이라며 웃어 넘겼다.
한양도성 상단에 뚫린 구멍은 총안이라 부른다. 적을 총이나 활로 쏠 수 있도록 만든 구멍이다.
능선까지 모두들 잠깐 입을 닫았다. 들숨날숨이 길게 이어지며 고도를 올린다. 총안으로 목인박물관 목석원의 정원이 보인다. 나무나 돌로 된 여럿 조각상들을 전시해 둔 공간이다. 이어 한양도성 부부소나무(연리지), 청와대 경비를 위한 경계시설물 터 등에 얽힌 이야기를 헤아리며 능선에 선다. 쭉 이어지던 성벽 사이가 똑 끊겼다. 여기서 기차바위로 내려서면 탕춘대성이 되는 것이다.
"탕춘대'성'이라더니 여기선 성을 볼 수 없네요?"
"왜 볼 수 없어요? 지금 이미 그 위에 서 계신데요."
그렇다. 기차바위가 곧 성이다. 워낙 험준하고 가파른 지형이기 때문에 이곳을 공격해 오더라도 능선에서 충분히 방어가 가능해 성을 따로 쌓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아무리 선조의 지혜가 뛰어나다지만 최근에 한 적이 이 자연의 성을 넘었다. 산불이다. 지난 2023년 봄에 일어났던 산불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솎아베기와 새로운 나무를 심은 구역이 있으나 모든 게 어느 정도 회복세에 들어서려면 7~8년은 더 지나야 될 듯 해 보인단다.
존재 자체로 성의 역할을 했던 인왕산 기차바위.
능선을 한참 따라 북쪽으로 내려선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올 때쯤에야 세월의 흔적이 제대로 엿보이는 묵은 돌들이 담처럼 쌓이기 시작하는 구간이 나온다. 탕춘대성이다. 이 성벽은 여기서부터 시작해 홍제천을 건너 북한산 향로봉을 향해 올라간다. 방 대표는 "탕춘대성은 한양도성에서 북한산성으로 임금이 피신을 가는 루트로 숙종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왜 굳이 성까지 쌓으면서 북한산성으로 가는 걸 고집했을까? 방 대표는 "선대 임금인 인조와 선조 때 몽진(임금이 수도를 버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란함)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라고 했다. 숙종 당시 한양 인구가 20만 명 정도 됐는데, 북한산성의 수용 가능 인원이 20만 명이다. 아마도 단 한 명의 백성도 버리지 않고 지킬 생각이었던 듯하다. 후대의 영조도 그 뜻을 이어 탕춘대성을 고쳐 쌓았다. 어쩌면 한양의 수도성곽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이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단순히 성이 멋있거나 오래됐고, 크고 긴 점 때문이 아니라 이 돌덩이들 하나하나에 시대를 넘어 한양을, 더 나아가 단순히 한양이란 땅이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삶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일 터다.
서울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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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따른다는 점으로 인해 장단점이 뚜렷하다. 들머리인 성북역사문화공원부터 홍지문까지 줄곧 성곽을 눈에 담고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샛길을 만나도 길을 잃을 염려가 전혀 없다. 이정표조차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문제없다. 다만 성곽을 따라 만들어진 데크나 돌계단이 코스 대부분을 이루고 있기에 편안한 흙길 구간은 짧다. 전반적으로 오르내림은 있으나 어렵진 않다.
네이버지도에서도 쉽게 코스를 확인할 수 있다. 초록색 실선으로 된 등산로 표시나 지도를 확대하면 나오는 성곽 궤적을 따르면 된다. 성북역사문화공원에서 와룡공원으로 오르는 길과 북악산에서 창의문으로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 인왕산으로 접속하는 구간은 초록색 등산로 표시가 생략되거나 약간 비껴 있는데 실제 성곽을 따르는 길이 둘 다 있다. 창의문에선 도로 건너 부암동 문화관광 안내판이 있는 곳 옆으로 난 계단을 타고 오르면 되며, 와룡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성곽 안팎을 오간다.
교통
성북역사문화공원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날머리인 홍지문에서 경복궁역 방면으로는 1711번, 1020번, 마포 방면으로는 110B국민대, 163번 버스가 수시 운행하며, 은평구 쪽으로는 7730번 버스가 다닌다.
맛집(지역번호 02)
부암동하면 자하손만두(379-2648)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일체의 조미료를 배제해 삼삼하면서도 깊은 맛의 만둣국(2만 원)을 먹을 수 있다. 끼니때가 아니라면 클럽에스프레소(764-8719)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5,000원)을 마시고 호흡을 정돈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다양하고 특색 넘치는 원두들이 많아서 기호에 따라 주문하면 된다.
홍지문에선 팔선생(0507-1358-8843)의 이름값이 높다. 화교 출신의 주인장이 오랫동안 운영한 정통 중국 요리 전문점으로 합리적 가격과 풍성한 양, 신선한 맛을 자랑한다. 짬뽕(9,000원), 삼선짬뽕(1만1,000원), 짜장면(8,000원), 탕수육(小 2만4,000원, 大 3만5,000원).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